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3일 열린 이태원 참사 국조특위에서 이태원 참사 발생에 대해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에 장관의 책임도 있다는 야당 의원의 질책에 나온 답변이다. 나는 이태원 참사가 '시스템의 문제'가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장관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과는 다르다.
우리나라의 재난 대처 상당수는 '사후약방문'이다. 이태원 참사 이전에도 압사 사고는 있어 왔다. 바로 옆나라 일본에서는 2011년 불꽃놀이를 보다가 압사사고가 일어나기도 했고, 스페인에서도 할로윈 축제를 하다 압사사고가 벌어진 적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주최측이 없는 행사의 메뉴얼이 없다며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은 '소극 행정의 결과'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이런 소극행정이 벌어지는 원인 중 하나는 안전과 관련된 정책을 시행할 때 우리나라는 상당히 '보수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점을 알더라도 자칫 '예산 낭비'라는 말이 나올까, 문제점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방청의 경우, 현재 전기차 화재 진화에 효과적인 '수조 형태의 소화장비'를 부산과 경기 일부 지역에만 비치하고 있다. 전기차 발전속도에 따라 소화 방식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섣불리 장비를 도입했다간 예산 낭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예산 낭비'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예산과 저울질한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재난안전 예산을 담당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2023년도 안전과 관련된 예산은 22조 원에 달한다. 이중 50%는 사회재난 분야에, 나머지는 기상재해와 기타 분야에 사용한다고 한다. 문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해양수산부, 행정안전부 등 정부부처가 재난안전 예산을 따로따로 받아간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재난 R&D 분야에서 경계가 모호한 분야는 소외되거나, 중복 투자될 가능성이 있다. 재난 상황에 대비해 만든 국민안전처는 실무만 담당할 뿐, 재난 R&D 사업이나 예산에 관여하지 않는다.
공무원들의 외유성 해외연수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공무원들의 해외 연수 일정표를 보면 유명 관광지나 축제 일정이 끼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 연수를 매년 수백명의 공무원이 다녀오는데도 주최측이 없는 행사에 대한 매뉴얼 하나 없어서 대처를 못했다는 것은 "그간의 해외연수는 보고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닌, 외유성이었다"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참사를 막지 못한 원인이 시스템에 있다면, 시스템의 총 책임자인 장관이 사과를 해야하는 것이 맞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시스템' 탓을 하는 것은 책임자가 아닌,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사람이나 하는 행동이다. 이런 사람을 장관직에 임명한 국가 인사 시스템에 문제는 없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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